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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메사제 (Annette Messager) 展 본문

문화이야기/그림이야기

아네트 메사제 (Annette Messager) 展

바람다당 2011. 10. 8. 23:49

                      

프랑스의 설치미술가 아네트 메사제 (Annette Messager)의 전시회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다.

그녀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기숙생들"에서 보여주었던 그의 엽기적인 작품세계였다.

마침 한국에서 보기힘든 아네트 메사제의 설치 미술 전시회가 열린다기에 다녀왔다.

소장 작품 못지 않게 뛰어난 풍경과 건축미를 자랑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아네트메사제 전시회 현수막 (기간은 6월15일까지)

이곳 저곳에서 펄럭이는 전시회 배너들

바람에 펄럭이는 배너들은 축제의 설레임을 준다.

현대미술(그 다양성과 광범위성으로 인해 개념정의 조차 쉽지 않다)을 감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현대미술이 두려움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하지만 작품의 감상 조차 교과서의 정답을 달달 외워야 했던 우리들에게, 현대미술이 주는 당혹감과 의문은 틀에 갖힌 사고의 한계를 깨어버리는 창조적 파괴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접근", 4개의 흑백사진 목탄, 1972, 파리시립미술관 - 국립현대미술관홈페이지

이번 전시는 세계적인 설치미술가인 아네트 메사제의 대규모 한국 전시이다.

평론가들의 평을 들추어보지 않더라도, 그녀의 작품에서 그녀가 페미니즘 작가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남성의 성기를 물질화 시킨 "접근"이나 사진을 이용해 자신의 신체를 부분으로 분리하여 해체한 "나의 트로피"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다른 극단적인 페미니즘 작가들과 달리 그녀의 작품에서 남성에 대한 공격적인 성향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좀 더 여성적인 시각으로 물질과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A. "그들과 우리, 우리와 그들" 2000 장갑, 색연필, 거울, 박제동물, 플러쉬 장난감

(국립현대미술관전시중) 上

B. "그들과 우리, 우리와 그들" - 원 작품. 작가소장

이 작품은 "그들과 우리, 우리과 그들" 이라는 작품이다. 위의 사진(A)이 현재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이고 아래의 사진(B)이 원 작품 사진이다.

아쉬운 것은 원 작품에는 동물 박제 위에 또 다시 동물을 아래로 비추는 거울이 있어 (아래. B) 이중의 거울이 주는 작가의 의도(그들와 우리, 우리와 그들이라는 주제의식)가 잘 표현된 반면,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작품에는 (가변설치라고 하지만, 작가의 의도가 지나치게 생략되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 보는 우리쪽에만 거울이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문 때문에 촬영이 금지 되어 있었지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작가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이중의 거울을 설치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국내 전시회에서는 이 설명대로 설치되지 않아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 설치된 작품을 통해 내가 느낀바는 이렇다.

박제된 동물들은 하나같이 인형머리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박제된 동물의 몸과 인형의 머리를 봉합했다고 생각했지만, 작가의 작업과정을 담은 다큐를 보며 단순히 인형을 뒤집어 씌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과적인 외형은 동일하겠지만, 단순히 뒤집어 씌운것과 머리를 자르고 봉합한 것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자르고 봉합하는 것은 물질의 재창조인 반면, 머리에 인형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관점의 전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동물과 인간 사이의 단절과 관점의 차이를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들(동물)과 우리는 서로 다른 인식의 영역에 살면서, 각자의 관점으로 서로를 판단한다.

인간은 인형이라는 의인화되고 가공된 동물의 세계로서 동물을 해석하여, 인식의 오류를 범한다.

박제된 동물을 올려다보며 동물의 모습과 거울에 반사된 우리의 모습이 동시에 보이도록 작품을 설치한 것은 작가의 의도는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한다.

살아있는 나와 박제된 동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삶과 죽음의 긴장 그리고 대립,

동물로서의 본성과 의인화되어 재창조된 동물성이라는 인간과 동물의 관점의 대립을

표현 하려 한 것은 아닐까?

(전시관내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하 사진들의 출처는 인터넷 검색입니다.)

아네트 메사제의 작품중에는 특히 사진을 통한 작품이 많다.

특히 인체의 일부분을 찍어 무작위로 재배열한 작품이 많았다. 위 작품도 그러한 작품 중 하나였다.

이러한 의도적인 해체와 파괴는 현대미술에서 자주 드러나는 문제의식의 표현방법이다.

특히 사진이 주는 매체의 특성 (찰나의 시간을 포착하여 고정화 시키는 것)과, 흑백 사진의 특성(물질에 대한 재해석)을 잘 활용하여 자신의 의도를 잘 드러내었다.

"부푼- 가라앉은"

인체의 해체와 재배열은 부푼 가라앉은에서 극대화 된다.

장기의 모습을 바람이 들어가는 풍선으로 표현하여 거대한 숨소리와 함께 장기들이 팽창되고 수축된다.

피노키오의 발라드, 혼합매체, 가변설치, 2005, 작가소장

"기숙생들", 박제된 새등 혼합매체, 1971-1972, 퐁피두미술관

<기숙생들>은 작가의 작품세계의 출발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이후 활발하게 전개되는 작가의 작품들을 예감케 한다. ‘삶-죽음’의 문제와 ‘고통의 주고받음’은 아네트 메사제의 작품세계에 있어 지속적으로 발견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연약한 새들에게 옷을 입혀 돌본다는 <기숙생들>의 개념은 작가의 작품이 갖는 또 다른 의미, ‘모성’과 ‘여성성’의 문제를 건드린다. 뿐만 아니라 길을 걷는다는 ‘일상적 행위’에서 작업이 유래한다는 점, 죽은 새들을 줍고 ‘수집’한다는 점 역시 <수집앨범>(1972-75), <옷에 얽힌 이야기>(1990), <사인(signature) 만들기>(2007) 등 이후의 작품에서도 볼 수 있는 작업방식이다.

일부 발췌 - http://blog.naver.com/moca2007/70028871475


"기숙생들"은 `아네트 메사제'라는 설치 미술가를 처음 내게 각인 시켜준 작품이다.

산책로에서 우연히 죽어있는 새를 발견한 작가는 죽어있는 새를 하나씩 주워 모아 털옷을 짜입힌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엽기적으로 보일 수 있는 작품이지만, 죽어있는 동물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극대화 시킨다는 점에서 작가의 의도를 잘표현해 주는 소재이다. 특히 죽어있는 새들에게 하나씩 털 옷을 입히는 행위는 그의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여성성과 모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작고 연약한 것들에 대한 관조와 보살핌이 그의 작품에서 드러난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거부감은 인류의 역사와 함게 해왔다.

특히 시체나 사체등은 삶에 대한 존엄함의 상징이자, 극도의 혐오감의 대상이었다.

이렇듯 금기시된 소재를 예술의 영역에 과감히 끌어들임으로서 작가는 강렬하고 극단적인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예술의 개념을 정의하기에 따라서 작가의 행위를 달리 평가 할 수 있겠지만, 주제의식의 공유와 의미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금기시된 소재의 사용은 효과적인 의사전달매체이다.

관점을 전환하고, 물질의 재배열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며, 다시 이를 확장한다는 측면에서 1970년대에 죽은 새에게 털옷을 입히는 작품을 만든 작가의 파격과 결단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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